1643년(인조21)~1712년(숙종3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적만(敵萬), 호는 야촌(野村). 1669년 문과에 급제하여 크게 명성을 떨치고 성균관에 등용되었으며 외직에 나아가서도 선정을 베풀었다. 벼슬은 정언(正言)을 거쳐 경주 부윤(慶州府尹)에 이르렀다. 저서로 ≪야촌집(野村集)≫이 있으며 여기에 시조 1수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