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마음으로
어른이 되면 내가 살아 있다는 기쁨 알게 될까 누군가 곁에 있어 줘서가 아니라 폭식해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다연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랑도 기록할 수 없다면
사랑을 쓸 수 없다면 저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에요
장이지 「불타버린 편지」
쉬는 날에는 쉬어야지
베개를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열어 둔 창문 안으로 햇살과 바람과 새소리가 동시에 들어오고 나는 잠시 당연해진다
오은 「홀가분한 마음」
꽃이 져도 지지 않을 것들
짙어지는 어린 연두잎들을 지긋이 올려다보는 더이상 꽃이 아닌 꽃 사랑이다
권지숙 「낙화」
청매화차를 마시며
입안 가득 고여오는 꽃잎의 은근하게도 씁쓸한 맛 꽃잎의 향기는 달콤하나 향기를 피워올리는 삶은 쓰거웁구나
김태정 「향기를 피워올리는 꽃은 쓰다」
매년 오던 꽃이 올해는 오지 않았다
꽃대가 올라왔을 멀고도 아득한 길 어찌 봄이 꽃으로만 오랴마는 꽃을 놓친 너의 마음이란
고영민 「적막」
가능과 불가능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고 사랑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한다.
이제니 「페루」
사월은 어떤 달일까
사월이 좋아 사월은 거짓말로 시작되고 사월은 후드티를 겉옷으로 입을 수 있는 날씨
한재범 「사월이 좋아」
좋은 것은 자꾸 생각나
봄볕 좋은 날 옥상에서 함께 부르던 노래 소나기 쏟아지는 날 우산 속 너와 나의 발걸음
김응 「좋은 것은 자꾸 생각나」
생각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 있다면
네 생각도 그렇게 오더라. 까맣게 잊고 있다가도 어느날 깨어보면 분명 간밤엔 오고 있었고 어느새 가버린 거야, 그래야 다시 올 수 있다는 듯이.
최정례 「개미와 한강 다리」
현기증 나는 지구에서
나의 시계가 고장났습니까. 아님 당신의 시계가 고장났습니까. 나의 시계는 지금 세신데 왜 당신은 자꾸 열시라고 합니까.
이경림 「고장난 시계 사이로 내려가는 계단」
호시절이 저 멀리 기차처럼 지나고
도착할 거라 믿었던 발도 없이 우리들은 늘 세상 속이었고 커지며 사라지며 세상을 고요하게 살아내기 시작했다.
유이우 「햇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