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다음 달이면 벌써 4월이구나, 싶어졌습니다. 작년 4월에 이사를 했으니, 빈집에서 출발한 지 꼬박 1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 집을 처음 봤을 때, 딱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집의 가장 좋았던 부분을 자주 잊고 지냅니다. 살아보기 전까진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살아봐야 좋아하는 장소가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1년이라는 시간은 그런 건지도 모릅니다. 처음 좋았던 점이 흐릿해지는 시간, 좋아할 부분을 만나게 되는 시간.
그리고 네 번의 계절을 모두 겪어 봤다는 걸 의미합니다. 작년, 봄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벽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원래 살던 집에서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 약 10분이면 도착하는데, 이사한 집에서 맞이하는 봄은 조금 달랐습니다. ‘이 동네는 봄이 예쁘구나’로 시작해서 ‘이 동네는 여름도 예쁘구나’ ‘이 동네는 가을이 진짜 예쁘구나’로 이어졌습니다. 겨울은 언제나 겨울입니다. 적당히 춥고,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는 집이라는 게 이번 겨울을 겪은 소감입니다.
빈집에서 출발하는 일은, 다가올 계절을 모처럼 다시 감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지금 집은 모든 면의 벽을 손수 칠했습니다. 우리 집은 가장 먼저 미색 크림을 섞은 흰색 페인트로 채워졌습니다. 자기 전 약을 먹기 위해 고개를 천장으로 향하면, 열심히 페인트칠을 했던 내 모습이 보입니다. 전등 가까이에 덜 칠해진 부분이 보이면 웃음이 납니다. 그런 빈틈은 정말 내 모습 같아서요. 덜 칠해진 채로 있어도 이 집에서만큼은 충분히 완성된 모습입니다.
1년의 시간을 또 한 번 겪으면 어떨까요. 새롭기에 부쩍 잘 느껴졌던 계절은, 두 번 칠한 페인트처럼 더욱 진해질지도 모릅니다. 최대한 느리게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조용히 숲을 산책하는 것처럼요.
말을 타고 천천히 숲을 통과한다
계절은 도처에 잠복해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의 리베르 탱고
여기를 통과하면 푸른 바다에 당도할 것이다
바다는 아주 멀리 있어
오, 말을 타고 천천히 숲을 통과한다
도처에 잠복해 있는 계절
여름의 숲에서 가을을 보고 가을의 숲에서 봄을 본다
계절은 도처에 잠복해 있으므로
후암동은 남지나해의 일몰로
장작불의 푸른 연기 속으로 범람하는 롬바르디 대평원으로 갈 것이다
나는 나에게 걸맞은 계절들을 호명하며
고독의 말을 타고 천천히 숲을 통과한다
고독의 말이 아주 먼 곳으로 나를 데려다줄 것이다
- 리산 「안녕, 나는 이사 간다」, 창비시선416 『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