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란 무엇일까
너라는 사람은 넓고 이름 안에서 꽃이 피고 지고… 이름에 갇힌 그 울림이 좋다
이종민 「메아리가 울린다」
답답한 마음 다스리기
내 마음 누가 알까 안다는 듯 모른다는 듯 흔들리는 나뭇잎들 풀 한 포기가 기다리는 것을 나도 기다려 본다
이근화 「한밤중 강변에서 기다리고 있음」
물방울은 글썽거린다
아그배나무 잔가지마다 물방울들 별무리처럼 맺혔다… 저 글썽거리는 것들에는 여지없는 유리 우주가 들어 있다
엄원태 「물방울 무덤들」
이제 가을이라고 불러야 하나
잘 익은 사과가 가을비에 온몸을 내맡기고 있다… 살아가는 건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재생하는 것일까?
김용락 「가을」
관계가 어렵게 여겨질 때
너무 가까워진 사이가 영 마뜩잖을 땐 거리를 좀 두고 무던히 지내고 싶어진다
박성우 「관계」
구멍을 들여다보게 된다
갑자기 무너져내리고 분별력을 잃고 보고 또 들여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구멍을 자꾸 쳐다보게 된다
최정례 「구멍 들여다보기」
우산이 경계가 되어주었다
나는 경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어딜 가도 머리 위로 구름이 따라오는 생활을 했다 내 것이 아닌 저 너머를 함부로 넘보지 않았다
조온윤 「파수꾼」
한 방울 이슬의 무게
지구가 기운데도 의심치 말라 방울져 잇달아 떨어지는 저 이슬 한 방울의 무한한 그 힘 그 무게 바로 그 때문임을.
인태성 「한 방울의 이슬」
북천에서 편지를 씁니다
사랑의 말을 편지로 쓴다는 건 얼고 녹고 부서지고 타버려도 사라지지 않을 알갱이 하나 전하는 것이지요
이대흠 「북천에서 쓴 편지」
나의 천국은
세상의 지식이 못 닿는, 세상에는 한번도 있어본 적 없는 나라, 있는 곳엔 없고 없는 곳에만 있을 게다.
유안진 「나의 천국은」
버리지 못한 욕심
욕망이란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해 자라나는 손가락이라서 밤마다 이가 자라는 쥐처럼 손끝이 가렵다. 가려워서 부끄럽다.
이현승 「일생일대의 상상」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보았네
벗어놓은 옷가지를 건드리지 않고 수락할 수 없는 것을 수락하는 연습처럼 툭,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보았네
장철문 「발을 닦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