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슭에 떠오른 창문을 바라본다
달의 먼지 낀 창문을 열면 환한 호숫가에 모여 있는 시루떡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리
박형준 「나는 달을 믿는다」
공중은 비어 있지 않다
꽃이 지고 난 자리 저수지의 물 마른 자리로 차곡차곡 차들어오는 것이 있으니
문성해 「공중」
눈빛과 눈길이 마주쳤습니다
추운 한 생명이 추운 한 생명을 서로 가만히 고요한 쪽으로 놓아주었습니다
문태준 「눈길」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그 기쁨 그 힘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하늘 바다에 그넷줄 내어 밀듯이 나를 멀리 띄워 보낸다
나태주 「하늘이 맑아 2」
어둠도 환하게 보이던 방
보잘것없는 물건들이 서로 비춰주고 되비춰주며 제 안에서 스스로 발광하는 낮은 빛을 조금씩 끊임없이 나누던 방.
김기택 「어둠도 자세히 보면 환하다」
생의 어디쯤에서 나의 사랑도
온갖 수사와 비유를 벗고 저렇게 낮은 목소리로 세상의 캄캄한 구멍을 울릴 수 있을까 간절하게 나를 부를 수 있을까
박영근 「물소리」
마음은 바다가 되기도 한다
잠에 든 너의 낯빛이 현실을 데우는 동안 오늘의 바다는 눕거나 일어선다
전욱진 「뜬눈으로」
우리는 새해로 걸어가자
빗방울 속으로 걸어들어가자,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글자의 편지들을 보내자, 누군가 읽을 거다, 우리의 편지,
강은교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글자의 편지」
다녀간 자국에 손을 대본다
눌변은 눌변으로서 완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아주 조그맣더라도
김선우 「눈 그치고 잠깐 햇살」
통증은 행복과 함께 앉아 있네
저녁이 사라진 삶에 야경은 전등의 통증들 용서를 선물할 때쯤 찾아오는 눈물의 통증들
유현아 「어느 지긋지긋한 날의 행복」
다시, 일출의 시간
동백은 혼자만 붉은 게 말이 되냐는 듯 주위의 빛을 서해 노을 쪽으로 자꾸 민다
박승민 「다시, 붉은」
손이 손을 잡는 것
팔목에 매달린 단 하나의 열쇠와 열쇠가 다른 손금을 포개는 것 새롭고 같은 굴곡을 갖게 되는 것
김중일 「식어버린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