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 올라 가을을 본다
여기서는 가을이 더 잘 보이고 나는 늘 높은 데가 좋다 세상의 모든 옥상은 아이들처럼 거미처럼 몰래 혼자서 놀기 좋은 곳이다
이상국 「옥상의 가을」
내게 찾아온 마음 가오리
손바닥 위에 지구를 띄우듯 등 위에 내 작고 말랑한 그래서 약한 마음을 태우고 숨기 좋은 곳 위주로 돌아다니며 구경시켜주었죠
손유미 「마음 바닥의 가오리」
버려야만 가질 수 있다
나도 슬픔에 빠지면 몸속에 모았던 물을 다 비워낸다 쏟아내고서야 살아남았던 진화의 습관이다
정끝별 「사막거북」
지나쳤으나 여전히 그 자리에
어느 늦은 밤 불 꺼진 악기점 앞에 서 있다 어느 눈 날리는 오후 악기점 앞에 서 있다 어느 단출한 선율이 나를 데리러 올 것이다
장석남 「어느 날 나는 악기 상가 앞에 서 있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잘 잤나요 당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요… 물소리 위에 다리를 놓아드릴게요 건너오세요
김용택 「정해진 얼굴은 없어요」
상강, 가을과 겨울의 사이
좋았던 날들 돌려보기도 하지만 쌀쌀과 쓸쓸이 섞어서 오는 저녁 털어내도 다시 젖는 상강의 옛 깃털이여
박승민 「젖은 가을에 이른 추위가 오니」
공생염전에서 들었다
입자의 굵기도 크기도 맛도 매일같이 달라집니다 햇빛이나 바람이나 염부의 관계가 늘 일정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소금이 온다고 하는 거죠
손택수 「소금의 결정」
무화과는 사랑의 열매
애들은 정말 모른다. 그 어떤 나무보다 꽃을 사랑하는 나무를 여린 꽃이 다칠까 봐 열매 속에 싸안고 피운 분홍빛 사랑의 꽃을
안학수 「무화과」
그래도 푸른 하늘이 있다
많은 페이지의 무수한 하늘이 있다 새로운 나를 낳고 싶다고 나는 푸른 하늘을 쳐다본다
김승희 「그래도 푸른 하늘이 많다」
마음은 예상과는 다르게 자란다
마음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니? 손바닥을 올려보면 부드러운 움직임이 느껴진다
김상희 「마음 오르기」
도무지 힘이 나지 않을 때에는
조막만 한 돌을 주워다가 잘 씻어서 햇볕 드는 곳에 두고 자주 쓰다듬었다 바라는 대로 될 거야 걱정하지 마 틈날 때마다 말해주었다
유병록 「돌봄」
내 삶이 실례 같다는 기분
내 삶이 실례라는 걸 안다 거리에는 슬픈 노래가 많아지고… 집은 불러도 말이 없다
유수연 「에티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