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를 대비하는 봄의 자세
잡초를 뽑기 위해 일기를 쓴다 그러다가 이 풀도 어여쁘다 이것이 꽃일지도 모르지 나를 향해 귀 기울이는 빛과 함께 가만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지연 「지복(至福)」
우리는 공원에 간다
운동을 좀 해야겠어 무작정 걸어간 공원의 트랙은 동그라미 모든 길이 이어져 있어 이곳을 걷는 동안 원 안의 사람을 전부 만날 수 있다
오산하 「공원의 모양」
봄산에서 한때, 길을 잃었습니다
길을 찾아헤매는 내 발자국이 길 위에 길을 보태었다는 걸, 산을 내려온 뒤에야 알았습니다
김태정 「봄산」
봄의 손을 열어 보인다
여기 조붓한 땅으로도 향기로운 봄이 찾아올 것이라는 자존심, 여전히 소년이 흐느끼지 않는 동안 나무도 무럭무럭 자라나 그늘을 드리울 수 있도록
채길우 「잎망울」
보풀은 지구에서만 자라는 풀
마찰이 있는 곳에서만 돋는 풀 늙으면 가장 먼저 발뒤꿈치에 핀다는 풀 죽음이 스치는 동안 피는 꽃
이소연 「보풀」
심심하다는 말, 외롭다는 뜻
오늘은 뻐꾸기가 우는데 내 맘이 산도 되고 들도 되고 쾌청한가 하면 울적도 하여 저마다의 울림이 있네
손택수 「심심하다는 말」
시작할 수 없을 때도 있어
남의 꿈을 꾸느라 한번도 자기 꿈을 꿔본 적 없는 사람도 있어. 광장처럼 공중을 해매는 꿈. 헤매다가 아무 데서나 열리는 꿈.
안미옥 「오픈」
사랑은 사람을 떠돌게 한다
아마도 사랑에는 유목민의 인자가 들어있는 게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랑 끝에 다시 그대를 그리워할 수 있겠는가
정희성 「유목민」
나는 오늘도 자명종을 맞춘다
원하는 시간에 자명종을 맞춰놓으면 갑자기 지금 이 시간으로부터 그 시간까지 하나의 긴 문장이 적히기 시작하는 것 같고
황유원 「자명종」
봄에는 봄의 그리움이 깨어난다
바람 만나야 소리 나는 것들 중에선 물거울보다도 마른 잎보다도 돌이 좋아요 공깃돌 다섯개 골라 굴리면 손안에서 피어나는 민물 냄새
신미나 「손오목에 꼭 맞는 돌」
바다는 받아준다, 답을 준다
우리가 삶을 사랑한다면 안목에게 묻지를 말아야지 불 켜진 안목을 사랑한다면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잊지 말아야지
심재휘 「안목을 사랑한다면」
올해 첫 보름달 뜨는 날
달은, 달은 까만 하늘에 박힌 하얀 눈동자. 내 눈은, 내 눈동자는 하얀 눈에 새겨진 까만 보름달.
정유경 「달, 눈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