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에 매달린 물방울 하나
후드득 땀방울 흩뜨리며 다시금 흐린 하늘 가까이 대롱대롱 매달리는 임계를 시험하고 반복하는 망설임과 다짐 들을 위하여
채길우 「철봉」
기억은 분해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뭉쳐진 기억들은 점점 희고 길어진다 이미 나뭇가지의 일부가 된 마른 고치처럼
나희덕 「남겨진 것들」
깊고 깊은 세계의 밤
문을 열다가 새파랗게 입술 떨고 있는 달과 만났다 달은 오늘밤 세계에서 가장 슬픈 이에게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강은교 「세계의 밤」
모든 것 앞에 당신이 있다
소쩍새가 산에서 운다. 그 산이 어느 편 산일까 분간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 다 무슨 소용인가. 생각하기 전에 본 그대 얼굴이 나는 좋다.
김용택 「생각하기 전」
우산을 접었다 펴며 생각합니다
나는 이제껏 손잡이로 무엇을 들어 올리려 했을까요. 도시는 어두워질 줄 모르고 산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지연 「우산을 쓰고 산책 갑니다」
오늘만큼은 혼자이고 싶은 마음
집을 구했다 공을 들여서 꾸몄다, 맞은편 옥상에서 체조하는 이웃이 밝게 인사를 해도 소파에 앉아서 그 인사를 받아줄 수 없는 것처럼 완고하게
남현지 「사양합니다」
한 생이 지나도록
탯줄처럼 낚싯줄을 끊고 사라진 저 배의 주인은 누굴까 거품처럼 사라지는 저 흰 물살은 누구의 폭죽일까
정끝별 「무구와 무고」
생각은 나를 하나로 모은다
하나의 꼭지점으로 몰려드는 몇개의 부챗살이나 바퀴살 오목렌즈 안으로 달려들어 종이를 태우고야 마는 햇빛 줄기들처럼
이선영 「생각은 감자 비린내처럼 강하다」
울지 마라 슬픔들아
바람이 숲을 몰래 지나가지 못하듯 억지로 못하는 게 인생이다 저녁이다 슬픔들아 어둠의 등에 업혀 집으로 가자
이상국 「저녁의 위로」
극지에서 태어나는 말
사랑해,라는 말에는 얼마나 자주 마음이 다녀가는지… 하루치 쓸쓸한 바람을 적재한 그날의 화물열차가 협곡을 지나간다
조정인 「말들의 크레바스」
자신과 세상을 지키기 위해
거래를 위한 셈법이 없는 문장들로 눈물을 벼려 담금질한 이들만이 투명하게 빛나는 돌을 손안에 쥔다
김선우 「눈물의 연금술」
무심한 아름다움을 찾아서
시베리아의 야쿠트인들은 입김이 뿜어져 나오자마자 공중에서 얼어붙는 소리를 별들의 속삭임이라고 부른다
황유원 「별들의 속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