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야기하러 가는 나무
내가 막힌 말문을 가지고 가는 나무 별자리들을 흔들며 밤을 모으는 나무
장석남 「이야기하러 가는 나무」
주머니만큼은 나의 것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밤이 여기 있다는 듯이 내가 그걸 가졌다는 듯이 잠깐
남현지 「주머니 속의 밤」
누가 나를 읽어주면 좋겠다
일어날 수 있어, 주문처럼 중얼거려 주고 나도 그랬던 적 있어, 문장에 밑줄 쫙 그어주고
정다연 「밑줄」
아무 말 없이 가신 이에게
나는 눈보라가 치는 꿈속을 뛰쳐나와 새의 빈 둥지를 우러러 밤처럼 울었어요
문태준 「이별」
나를 살게 하는 사람들
일어나 앉아 자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내 눈을 감기고 옷 입혀줄 큰 아이가 옹알옹알 잠꼬대를 한다… 저 눈꺼풀 안의 눈빛이 사탕을 녹여 부은 듯 혼곤하리라.
이현승 「잠 깨우는 사람」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눈이 오면 왜 사람이 생각나고, 눈이 오면 왜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까
강우근 「모두 다른 눈송이에 갇혀서」
추억이 얼얼한 날에
청춘이란 그렇게 파국을 향해 직진하는 것 제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
정끝별 「청파동 눈사람」
졸업을 앞두고
시간이 가니 졸업은 하는구나 시간이 부지런히 나를 키우는 동안 난 뭘 했을까
김현서 「졸업을 앞두니」
어떤 풍경은 영원이 된다
몸이 자꾸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어머니 손을 잡았다… 살아온 날들이 지나간다.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
김용택 「우주에서」
겨울에 떠올리는 여름 풍경
자꾸만 사랑에 빠진다. 점프를 하면서. 사랑으로 떨어지면서. 이제 더이상 빠질 사랑이 없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한 뒤에도 나는 더 깊은 사랑에 빠지고.
여세실 「꿈에 그리던」
저물녘, 별들을 바라보면서
먼 훗날에 이미 다다른 나는 낯익은 우리의 폐가를 내려다봅니다. 도대체 몇차례의 생애를 내달려 나는 그대에게 안겼을까요.
정우영 「흐르는 별들이 내리는 곳」
슬픈 날엔 잼을 졸입니다
바닥이 눋지 않게 주걱으로 잘 저어야 하고, 너무 졸여서 딱딱해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합니다 그러는 사이 해는 지고, 울던 새들은 조용해지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황인찬 「깨물면 과즙이 흐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