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 앉아 있는 자리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는, 하루 중 몇 안 되는 순간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여전히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프리랜서가 되어 마음으로 쓰고 그린 글과 그림을 번번이 만들어내지만, 새로운 일을 맡게 되면 언제나 방금 태어난 마음가짐이 됩니다. ‘이번 일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이걸 내가 한다고? 왜 나에게 이 일이 왔을까?’ 하며 꼭 한 번은 낮은 마음이 됩니다. 나보다 타인이, 나의 다음을 더욱 쉽게 상상하나 봅니다. 바로 얼마 전에 비슷한 일을 마감했는데도 내 주변을 휘휘 돌면서 의심합니다. ‘어디 보자’ 하면서 일단은 나를 노려보기 바쁩니다. 이런 마음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을 테지요. 사실은 일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내가 어느샌가 맡을 일에 열중합니다. 단정하고 착실하게. 눈앞의 나를 그저 믿는 순간입니다. 자신이 있다는 말은, 무언가를 완성하기 직전에 아주 잠깐 느끼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날에는 SNS에도, 유튜브에도 눈이 가지 않습니다. 일부러 안 보려고 하면 얼마나 들여다보고 싶던지요. 아직은 만들어지지 않은 세상에 다녀온 기분이 들걸랑 그제야 내가 낯설어집니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의 역사는 이렇게 아무 날에 만들어지는 건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가장 큰 변화는 어제 불지 않았던 바람이 분 것 정도로, 어제와 다르지 않은 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의 짧은 집중은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나’를 만들어줄지도 모르지요. 집중이라는 말은 ‘모으다, 가운데로’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아직은 중심이 없는 일도, 꾸준히 같은 마음을 모은다면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향해 오늘도 일단은 나를 믿어봅니다.
얼마 전부터 작업실 대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하루 안에 완벽하게 정리하기란 쉽지 않아서 무리하지 않고 있어요. 조금씩 나아가는 마음으로 일단은 급한 일부터 합니다. 정리 또한 매일의 할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창문 가까이에 책상을 두었습니다. 가끔은 참새가 찾아와 일하고 있는 저를 내려다봅니다. 그럴 때면 궁금해집니다. 어제 왔던 참새와 같은 친구인지 알고 싶어요.
모바일이 한번도 울리지 않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나도 고요하고 잎새도 고요하다
바람이 조금 살랑거릴 뿐이다
- 이시영 「바람이 조금」, 창비시선 341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