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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일본 이와테현의 한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치에코 씨는 27년 전 한국으로 와 창원에서 살고 있다. 그의 직업은 환경미화원으로 평일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내가 다니는 회사 건물?청소를 맡고 있다. 2020년 초 지금 건물에 사무실이 입주했으니 그동안 엘리베이터와 화장실, 로비에서 치에코 씨와 인사를 나눈 지도 3년이 넘었다. 그와 긴 대화를 해본 적은 없지만 나 혼자서는 꾸준히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화장실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는 그의 부지런함과 종종 인사를 나눌 때마다 느껴지던 명랑한 기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얼마 전 화장실에서 마주친 치에코 씨에게 늘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건넨 것은 충동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이후에 나누게 될 긴 대화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그날 치에코 씨는 세면대 쪽 바닥을 닦다 말고, 나는 개인 칸에 들어가려다 만 어정쩡한 자세로 몇 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이고, 그곳에서 나는 무슨 일을 하는지. 치에코 씨는 언제부터 이 일을 했고 평소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는지에 대해. 달님과 치에코라는 서로의 이름도 그 자리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내 이름을 들은 치에코 씨는 하늘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달. 일본어로는 츠키(つき)예요”라고 말해주었다.
“저는 치에코 님을 보면서 항상 성실하게 일을 하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궁금했고요.”
“그렇게 보였다니 기쁘네요. 저는 이 건물에서 일하는 게 재밌거든요.”
“그래요? 어떤 점이 재미있어요?”
“이 건물에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일을 해요. 매일 다른 일도 일어나고요. 그래서 여기에서 일하고부터는 미화일기도 쓰기 시작했어요.”
“미화일기요?”
“네. 그날그날 재미있었던 일들을 적어요.”
“혹시 저에게 미화일기 이야기를 더 들려주실 수 있나요?”
그래서 우리는 이틀 뒤 건물 로비에 있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만났다. 약속 시간은 그가 퇴근하는 5시. 일하는 곳이라는 생각에 한번도 커피를 마시러 와본 적 없다는 그와 평소 내가 자주 이용하는 2층 자리에 앉았다. 조금의 어색함을 느끼며 인사를 나누는 동안 치에코 씨는 여기 이 자리에서 내가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쓰는 모습을 몇 번 보았다고 했다.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모습으로 앉아 있어서 글을 쓰는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다고.
“저를 보셨어요?”
“네. 이전에는 1층 긴 테이블에 주로 앉아 있었지요? 그 자리는 이 건물에서 두 사람이 가장 자주 앉아요. 건물 사장님과 달님 씨요.”
그랬다. 오전 시간에 작업을 할 때는 1층 입구 쪽에 있는 긴 원목 테이블에 앉는 것을 선호했다. 카페 직원 외에는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치에코 씨가 알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제가 일하는 건물에 있는 카페니까 청소를 하면서 지나가다가도 한번씩 안을 살펴보거든요. 오늘은 손님이 얼마나 왔나 궁금하기도 하고요.”
한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눠본 치에코 씨는 호기심이 많고, 순간순간 기쁨과 고마움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커피 한 잔과 딸기가 올려진 예쁜 케이크에도, 회사에서 하는 일 외에도 에세이를 쓰고 있다고 나를 소개했을 때도. 그동안 줄곧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에도. 특히 내가 쓴 책과 선물로 주고 싶은 책 한 권을 건넸을 때는 부쩍 높아진 목소리로 사실은 자신이 한국에 오기 전 도쿄에 있는 큰 인쇄 회사에서 일을 했다고 말해주었다. 종이를 손으로 만지는 느낌과 냄새가 좋아 출판사에서 일을 해보고도 싶었다고. 여전히 종이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도. 그리고 치에코 씨는 “이것이 궁금하다 하셨지요?”라며 가방에서 노트 하나를 꺼냈다. 손바닥 두 개만 한 크기에 분홍색 꽃이 그려진 유선 노트였다.
“이 노트가 미화일기인가요?”
“네. 맞아요. 혼자서 일하니까 재미있는 일이 있어도 말할 사람도 없고. 그래서 적기 시작했어요.”
치에코 씨는 두서없이 적은 일기라 문장을 다듬지 못했다며 직접 보여주는 일은 쑥스럽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자 대신 몇 가지 일기를 읽어주겠다고 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달님 씨가 일하는 9층 회사 사람들을 보며 쓴 일기예요. ‘9층에 올라가면 여러 사람이 있다. 머리가 아주 긴 남자도 있는데 그 사람은 스케이트를 타고 출근해서 아침마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다. 홍보 회사라서 그런지 다들 개성이 넘치는 모습이다. 사장님은 교회 집사님 같은 모습으로 항상 웃고 있다. 다들 인사만 하는 사이지만 재미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있을까.’”
치에코 씨의 일기를 듣고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스케이트를 타고 출근하던 직원의 모습도 늘 웃고 있는 사장님의 얼굴도. 치에코 씨는 이런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머리 긴 남자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던 날, 로비에서 우연히 마주친 자신에게 다가와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하고 갔다고. 자신에게도 인사를 하고 떠나는 사람은 처음이라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2020년 6월 4일에는 「고마운 말」이라는 제목을 붙인 일기를 썼다.
“제가 청소 노동을 하기 전에는 일본 요리 전문점에서 조리 일을 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일을 쉬고 있다가 운 좋게 이 건물에서 일하게 된 거예요. 처음 하는 일이라 힘든 점도 있었지만 몇 달을 해보니 차츰 일이 손에 붙었고, 익숙해지니까 조금 심심해지는 마음도 생겼지요. 그즈음 9층 남자화장실을 청소하는 중에 직원 한 분과 마주쳤어요. 평소에 늘 무표정한 분이었는데 그날은 저에게 “화장실이 정말 깨끗하네요”라고 말해주더군요. 농담으로 “조명 때문에 깨끗해 보이는 거 아니에요?” 하니 그분도 웃고 나도 웃었지요. 그리고 청소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이번에는 9층 홍보 회사 사장님이 저에게 “덕분에 저희가 깨끗한 환경에서 일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해주었어요. 참 신기한 날이죠. 그날 일을 일기에 적으면서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어요. ‘안 보고 있는 것 같아도 다들 보고 있구나’라고요. 그동안은 나만 보는 줄 알았거든요.”
치에코 씨가 근무하는 건물에는 10여 개의 크고 작은 가게와 회사가 있고, 200여 명의 사람들이 매일 출퇴근을 한다. 카페와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세어보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이 건물을 다녀간다. 매일 몇 회 청소를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치에코 씨가 스스로 정한 약속은 있다. 하루 두 번 이상은 꼭 청소를 할 것. 식당이 있는 2층은 세 번 청소를 할 것. 가끔 일이 힘들게 느껴질 때면 처음 이 일을 가르쳐준 70세 선배의 말을 떠올린다. 화장실 청소가 더럽고 힘들 때도 있지만 내 가족이 쓰는 곳이라 생각하면 덜 힘들어진다는 말을. 그게 이 일을 계속하는 비결이라던 30년 경력의 선배 조언을. 거기에 더해 이 일을 몸으로 겪으며 치에코 씨가 찾은 비결도 있다고 했다.
“제가 쓰던 미화일기가 미화생존일기로 바뀌었던 때가 있었어요.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아침에 일어나니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았어요. 무리하게 손을 너무 많이 썼던 거예요. 초보라 몸만 앞서는 바람에 골병이 난 거죠. 잘 낫지 않아서 병원에서 엄청 비싼 주사도 맞았어요.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내 몸을 해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지 일기를 쓴 거예요. ‘빠르게, 빠르게 가 아니라 천천히 닦아야 한다. 독한 세제는 나를 병들게 하니까 순한 세제를 써야 한다. 물로 할 수 있는 청소는 물로만 하자. 쉴 때는 쉬고 일하자.’ 결국은 내가 건강해야 계속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치에코 씨는 이 건물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자리가 있다고 했다.
“9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창문이 하나 있잖아요. 쉬는 시간에는 그 자리에 서서 창문 밖을 구경해요. 예쁜 풍경은 아니고 한창 건물을 짓는 모습인데, 세어보니 늘 스물다섯 명 정도 되는 인부들이 일을 하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열심히 하고 어떤 사람은 농땡이를 부리고 있죠. 그렇게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시간이 재미있어요.”
치에코 씨가 말하는 창문이 무엇인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나 또한 여러 번 그 앞에 서서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을 바라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날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건물 1층 너비만큼의 유리창이 있었다. 커다란 창 너머로 차도를 지나가는 버스와 자동차들, 걸어가는 사람들, 저녁이 오는 만큼 선명해지는 신호등 불빛이 보였다. 시계를 보니 저녁 6시 반이 넘은 시간. 치에코 씨와 만났을 때는 푸르스름하던 하늘이 차츰 붉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치에코 씨도 식구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치에코 씨에게 몇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일기는 주로 언제 쓰는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인지. 취미 활동은 무엇인지. 그중엔 좋아하는 한국어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치에코 씨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대답했다.
“정성. 저는 정성이라는 말이 좋아요.”
“왜 그 말이 좋은가요?”
“정성에는 마음이 담겨 있으니까요.”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 정성은 그날 치에코 씨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 안에서 저절로 자라난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정성을 다하는 대상이 매일 반복되는 노동뿐 아니라 이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 그렇게 쌓여가는 자신의 삶이라는 점이 나의 한구석을 반듯하게 펴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그에게서 느껴지던 명랑한 기운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치에코 씨와 이야기를 나눈 이후 언제나처럼 엘리베이터와 화장실, 건물 로비에서 그와 종종 마주친다. 이전과는 다른 반가움으로 인사와 안부를 나누고 헤어지는 것이 달라졌을 뿐. 그리고 생각한다. 이 건물에는 내가 아는 한 사람이 있다고. 매일 아침 사람들이 감동할 것을 기대하며 성실하게 그날의 노동을 다짐하는 사람이. 건물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궁금해하고 쉬는 시간에는 좋아하는 창문 앞에 서서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사람이. 정성을 다해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날 마음에 담아둔 것을 일기에 적는 사람이. 치에코 씨를 떠올리면 건물 곳곳에 그가 있을 만한 자리마다 조명이 켜지는 것 같다. 치에코 씨가 없어도 그 자리를 알아볼 수 있다. 서로 이름을 알기 전에도 치에코 씨가 나의 자리를 알아보았듯이. 하루하루. 우리 삶이 함께 흐르고 있다.
+ 2020년 5월 치에코 씨의 미화일기.
나는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가. 내가 깨끗하게 청소를 하면 사람들이 감동을 하겠지 생각하며 일을 한다. 그러면 깨끗해지는 걸 보고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내게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기록하는 노트가 있다. 내가 이 삶을 계속 사랑할 수 있도록 해준 말들을 모아둔 노트다. 지금껏 쓴 많은 글들이 이 노트에서 시작되었다. 다음에 쓰게 될 글 역시 여기에 있다. 세 권의 산문집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나의 두 사람』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