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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이었을 것이다. 동네 친구들을 따라 피아노 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등록한 지 며칠 만에 그만두는 바람에 다녔다고 말하기엔 조금 민망하지만말이다. 피아노 학원에 대한 기억은 해상도 낮은 서너 개의 장면으로만 남아 있다. 여름이 가까워지던 어느 오후. 가방을 메고 계단을 올라 문을 열었을 때 발 디딜 틈 없이 현관에 꽉 차 있던 신발들과 각각 다른 피아노 소리가 들리던 여러 개의 방. 그중 작은 창문이 있던 방으로 들어간 나는 말없이 건반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옆에 앉은 선생님이 “집에 가고 싶니?”라고 묻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던 것도 기억한다. 그때는 선생님 앞에서 엉성한 피아노 실력을 보여주는 일이 몹시 쑥스러웠다. 이후로 피아노를 배우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서른다섯. 다시 한번 피아노 앞에 앉아보고 싶다는 마음은 어느 날 특별한 계기 없이 나타났다. 한 번 생겨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언제 필요할지 몰라 가방에 넣어 다니는 상비약처럼 내 안에 조그맣게 머물렀다. 그러다 좋아하는 영화 OST를 피아노 연주곡으로 듣게 되었을 때나 유튜브에서 누군가 몰입해서 연주하는 동영상을 보았을 때. 또 어느 주말 대형마트 악기 코너를 지나다가 특가 세일 중인 피아노를 볼 때면 하얗고 가지런한 건반에 손가락을 얹어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제 와 피아노를 배우기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이 나이에 학원을 찾으려면 어릴 때 바이엘은 뗐어야 하는 것 아닐까. 처음부터 차근차근 익혀나가야 할 시간이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루는 친구에게 말했다.
“악보도 볼 줄모르는 내가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까?”
“당연히 처음엔 잘 못 하겠지. 그런데 생각해 봐. 네가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몇 년 후에도 너는 아무것도 못 하겠지만, 네가 지금이라도 시작하면 마흔에는 네가 원하는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야. 미래의 네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
마흔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나.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아직 되지 않은 나를 꿈꾸는 일은 근사했다. 친구 말에 힘입어 12월중순 집에서 멀지 않은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첫 수업이 있던 날엔 많은 비가 내렸다. 학원 앞에 도착하자 피아노 건반이 그려진 무릎 높이의 하얀 입간판이 보였다. 벽돌집 2층에 있는 작은 피아노 학원이었다. 대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자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섞여 희미하게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현관에는 어른 신발 몇 켤레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선생님이 안내해 준 작은 방에 들어가자 덮개가 열려 있는 검은색 피아노와 깨끗한 건반, 작은 창문이 보였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오후 5시인데도 창밖이 깜깜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 조심스레 건반 위에 손을 올려보았다. 습관처럼 물어뜯은 손톱과 정리하지 않은 거스러미가 눈에 띄었다. 가방에서 핸드크림을 꺼내 구석구석 바른 다음 다시 양손을 올려보았다. “쳐봐도 될까?” 마음속으로 두둥실 물음표가 떴다.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어 도 건반을 눌러보았다. 도- 하고 작은 방에 번지는 소리. 이렇게나 크고 맑은 소리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첫 수업엔 음표 읽는 법을 배운 다음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 도 레 미 파 솔을 차례로 쳐보았다. 건반을 누를 때마다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우산을 쥐지 않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걸었다.잠들기 전엔 캘린더에 ‘피아노 학원에 가는 날’을 매주 반복 일정으로 등록했다. 월요일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내게도 피아노의 시간이 생겼다.
학원에 다닌 지 3주 정도 지났을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어린이 피아노 선배님을 만났다. 아홉 살인 친구의 아이는 얼마 전 바이엘 4권을 끝내고 열 살이 되면 체르니를 시작한다고 했다. 이모는 요즘 무얼 배우냐고 해서 교재를 보여주었다. 아이는 표지에 적힌 『성인을 위한 쉬운 피아노 교본』 제목을 따라 읽더니 웃었고, 그러고선 조금 미안했는지 원래 쉬운 게 재미있는 거라고 해서 나를 웃겼다. 그날 나는 아이에게 이모는 아직 악보를 보는 게 익숙지 않아서 선생님 앞에서 자꾸 연주를 틀리게 된다고, 그래서부끄럽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듣고 거실로 쪼르르 달려간 아이는 이면지와 색연필을 가져와선 오선지를 죽죽 그렸다. 그리곤높은 음자리표와음표를그리더니 내게 계이름을 알려주었다. “이모. 이건 도, 이건 레, 이건 미예요.” 중간중간 계이름 퀴즈를 내서 정답을 맞히면 “이모, 이제 잘하네요!”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 어렵지 않았어?”
“처음엔 저도 어려워서 많이 틀렸어요.”
“틀리면 부끄럽지 않았어?”
“부끄럽지 않았어요.”
“왜?”
“왜냐하면 저는 배우는 중이니까요. 원래 배울 때는요, 어려운 거예요.”
아이는 지난주에 내가 배운 악보를 보더니 식탁 위에 양손을 올려 마치 건반이 있는 것처럼 연주를 했다. 아홉 살이면 많이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쭉 편 손가락과 손톱이 여전히 작았다. 아직 자랄 일이 많이 남은 손. 그 후 건반 위의 커다란 내 손을 내려다볼 때면 종종 아이의 작은 손이 떠오르곤 했다.
피아노를 시작한 지도어느새 6개월에 접어들었다. 첫날엔 추워서 닫아두었던 창문도 이제는 활짝 열어둘 수 있고, 5시에도 바깥이 밝다. 한 번씩 선선한 바람도 불어온다. 지금까지 선생님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괜찮아요”, “처음부터 다시 해볼게요”다. 한 악보에 손가락이 익숙해질 만하면 늘 다음 페이지엔 더 어려운 악보가 있어 매번 선생님 앞에서 실수하고 더듬거리게 된다. 여전히 내가 내는 소리에 놀랄 때가 있고, 연습한 만큼 잘되지 않아 실망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작고 분명한 성취들도 기억한다. 사용하는 건반 수가 늘어났고, 손가락의 움직임도 더 많아졌다. 몇몇 연주곡은 악보를 보면 천천히 끝까지 칠 수도 있다. 최근에는 비틀스의 ‘Let it be’ 초보 버전을배우면서 언젠가는 더 복잡한 악보로 ‘Let it be’를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꾸준히 연습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Let it be’를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내가 이런 것도 해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꿈꿔보는 것. 가능성이라는 건 원래 내게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는 게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했기 때문에 생겨나기도 한다는 걸 피아노를 배우며 알게 되었다.
지난주 수업을 마치고 학원을 나서는데 다른 방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같은 시간에 수업을 듣는 60대 여성분의 연주였다. 짧게 들어도 몇 달 사이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게 느껴졌다. 현관에 남아 있는 그분의 단정한 단화를 보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살랑 초여름 바람이 불었다. 한때 극장을 좋아했던 이유는 어두운 상영관을 빠져나온 후에도 여전히 영화가 끝나지 않은 듯한 기분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요즘엔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남아 있는 여운을사랑하고 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랐다는 기분. 낮은 미파솔에서 높은 레로 폴짝 손가락이 착지할 때처럼, 어떤 저녁에는 폴짝 뛰고 싶은 기분이 든다.
내게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기록하는 노트가 있다. 내가 이 삶을 계속 사랑할 수 있도록 해준 말들을 모아둔 노트다. 지금껏 쓴 많은 글들이 이 노트에서 시작되었다. 다음에 쓰게 될 글 역시 여기에 있다. 세 권의 산문집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나의 두 사람』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