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되면 친구의 얼굴이 방 안에 떠오릅니다. 저에게 소중한 친구 둘이 태어난 계절입니다. 추웠던 공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하루씩 알게 될 때 친구의 집을 그려봅니다. 가장 최근에 나눈 대화들이 말풍선으로 그려지고, 친구 집에서 봤던 풍경이 흐릿한 연필 선으로 그려집니다. 기억으로 쓰고 있는 마음속 노트도 훑어봅니다. 친구가 어떤 일에 웃었고, 또 어떤 이야기에 찡그렸는지 뒤적거리다 보면, 친구 집에 놓이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무언가가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올해 친구 둘의 선물은, 최근의 저를 가장 행복하게 한 물건으로 골랐습니다. 내 자리를 위해 살 때는 참 오래 고민을 했는데, 친구를 위해 살 때는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좋은 일상을 어서 나누고 싶은 마음이 앞장을 서서 먼저 생일 파티에 가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올해의 생일도 함께 축하할 수 있어서 기뻐’라는 문장이 담긴 카드를 썼습니다. 늘 쓰게 되는 이 문장이, 이번 생일에는 어째서 이토록 절실할까요.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꺼이 감사한 지금을 살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담아 친구를 위해 주문한 비건 파운드케이크 위에 예쁜 색의 초를 꽂았습니다. 친구가 불어서 끈 촛불에는 오늘의 무사함이 표시됩니다.
친구를 진하게 떠올리고 축하를 하는 시기는 또 한 해가 지나서야 돌아오겠죠. 그 주기가 너무 길다는 생각을 합니다. 생일을 기념하는 만큼, 우리의 매일과 다행인 지금을 자주 기념하고 싶습니다.
파운드케이크 위에 초를 꽂고서 신이 나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던 장면을 떠올리니, 초를 바라보며 잠시나마 무언가를 다짐하거나 안심할 만한 시간이 친구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 같아서 마음이 쓰입니다. 친구의 마음을 미리 상상해보고, 친구가 봤으면 하는 글씨를 빵 위에 새겨서 갔으면 어땠을까, 잘라 먹고 싶은 단어를 함께 꼭꼭 씹어 삼키는 시간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하며, 뒤늦은 후회를 가져봅니다.
우리는 또 누군가의 생일에 모여서 새삼스럽게 손뼉을 치고 웃어 보이겠지요.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일은, 익숙한 내 방을 모처럼 깨끗이 닦는 일과 닮았습니다. 잘 알고 있는 자리에서 모처럼 웃으며 시작하는 일. 다음 친구 생일에는 어떤 글씨를 새겨가면 좋을까요. 저는 다가올 생일에 ‘축 시작’이라고 적힌 초를 불고 싶습니다.
우리는 빵 위에 촛불을 꽂았네
우리는 글자 위에 촛불을 켰네
글자는 금세 환해지고
빵은 금세 환해지고
우리는 글자가 새겨진 빵 주위에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고
고깔모자를 쓴 아이는 후, 입김을 불었네
우리는 축 생일을 자르고 축 개업을 자르고
축 발간을 잘라 한 조각씩 나눠먹었네
우리는 빵 위에 새겨진 글자들을 나눠먹었네
축 생일이 잘리고 축 개업이 잘리고
축 발간이 잘리고 빵 위에 새긴 글자들은 잘리었네
빵 위에 글자를 새기는 건 나빠, 좋아?
대답이 필요없는
모임이 끝나고
우리는 낱말처럼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네
- 유홍준, 「빵 위에 쓴 글씨」, 창비시선 330 『저녁의 슬하』(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