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port url('https://fonts.googleapis.com/css2?family=Noto+Serif+KR&display=swap');
달님 씨. 혹시 명서시장에 가본 적 있나요? 네. 맞아요. 근처에 초등학교 하나 있고, 유명한 밀면 가게 있는 시장이요. 얼마 전에 엄마랑 같이 그 시장엘 다녀왔거든요. 거길 다시 가게 될 줄은 몰랐는데 오랜만에 가보니까 참 좋더라고요.
언젠가 말한 적 있던가요. 제가 학생일 때 엄마가 노점에서 오래 장사를 하셨다고요. 시장에서도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하려면 자릿세를 내야 하는데 저희는 형편이 안 돼서 엄마가 리어카에 물건을 싣고 이 시장 저 시장을 돌아다녔어요. 평소에는 유통기한이 긴 칼국수 면이나 당면만 들어있는 납작 만두를 떼와서 팔고, 대목에는 제사상에 올릴 바나나도 팔고요. 몸이 작은 엄마는 팔 힘으로 리어카를 끄는 게 아니라 리어카 손잡이를 이렇게 배에 대고 배 힘으로 밀면서 앞으로 나아갔어요. 그러다 시장에 빈자리가 보이면 잠시 멈춰서 음식을 팔았다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빈자리가 보이면 또 잠시 리어카를 세우고. 그렇게 시장 한 바퀴를 도는 거예요. 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 주변 상인들이 불편해할 수 있으니까요.
시장에서 일하는 엄마 모습을 처음으로 본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예요. 설날을 앞두고 엄마가 함안 오일장에 가는 날이었어요. 함안이 도시 규모는 작아도 오일장이 꽤 크게 열렸거든요. 아침 일찍 장에 도착하려면 아직 캄캄한 새벽에 집을 나서야 했는데 그날은 어쩐지 엄마를 따라나서고 싶더라고요. 날도 춥고, 일손도 부족해 보이고… 엄마는 오지 말라고 하는데 기어코 같이 가겠다고 차에 올라탔어요.
설날을 며칠 앞둔 날이었으니까 이른 아침에 얼마나 추웠겠어요. 시장에 도착해 보니 바닥이 빙판처럼 얼어서 가만히 서 있는데도 발이 너무 시린 거예요. 그날따라 리어카는 또 왜 그렇게 무거워 보이던지. 엄마를 도와서 리어카에 상판을 깔고 그날 팔 음식들을 올려놓는 동안 두 귀가 저릿저릿 시렸던 기억이 나요. 장사 준비를 마친 엄마는 시장에 들어서면서 여기서부터는 자신을 따라오지 말라고 했어요. 혼자서 하면 되는 일이라고요. 그 말에 알겠다고는 했지만 사실은 몇 발자국 뒤에서 몰래 엄마 리어카를 따라갔어요. 나중엔 엄마도 알았을 거예요. 내가 저만치 뒤에서 따라오고 있다는 걸.
시장에서 본 엄마는 생각보다 씩씩했어요.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리어카를 끌고 가는 모습이나, 평소엔 조용조용한 사람이 큰 목소리로 “바나나 사세요, 바나나”를 외치는 모습이나, 손님들에게 어떤 바나나가 좋은지 친절하게 설명하는 모습이나. 엄마에게 저런 면도 있구나, 장사에는 영 소질이 없는 줄 알았는데 우리 엄마 되게 프로 같네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걱정이 많았는데 엄마가 이 일에 나름 익숙해진 것 같아 조금은 다행이다 싶었고요.
그러면서도 엄마를 보는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어요. 몸에 힘을 줘서 리어카를 끌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상체가 앞으로 숙여지잖아요. 앉아서 쉴 자리도 없이 그렇게 계속 애쓰면서 하루 종일 리어카를 끄는 엄마를 따라 걷는데 엄마 뒷모습이 꼭 벌을 받는 사람 같았어요. 하염없이 무거운 것을 이고 지고 끝없이 걸어가야 하는 형벌이요. 엄마 인생이 계속 이러다 끝이 나면 어떡하지. 앞으로도 가난이 끝이 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막막했어요. 몸 아끼는 일 없이 그렇게 고생을 하는데도 그 시절에 우리 집은 항상 너무 돈이 없었거든요.
저는요. 고등학생 때를 생각하면 맥도널드 맥플러리가 떠올라요. 토요일엔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이랑 밥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맥도널드에 가는 게 정해진 코스 같은 거였거든요. 소프트콘이 300원, 맥플러리가 1,500원이었는데 저에게 1,500원은 너무 부담스러운 돈이었어요. 아이스크림이 뭐예요, 버스비가 없어서 학교에 못 갈 뻔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게 사 먹는 맥플러리를 저는 싫어하는 척하면서 소프트콘을 사 먹었어요. 혼자서 안 먹을 수는 없으니까 나는 아무것도 안 든 게 더 좋아,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참았죠.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대부분 그런 식으로 마음을 참는 일이었어요. 하고 싶은 마음. 사고 싶은 마음. 먹고 싶은 마음. 그래서 그때는 가난이 무섭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계속 이렇게 살아가게 될까 봐.
그래도 달님 씨. 삶이라는 게 참 이상하죠. 그날 엄마를 따라 함안 시장에 갔던 날에도 좋은 기억이 남는 걸 보면요.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시장에 오래된 국숫집이 하나 있었거든요. 발이 꽁꽁 어는 추운 날에 엄마랑 그 집에 들어가서 국수를 사 먹는데 너무 따뜻하고 맛있는 거예요. 서로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한 그릇을 다 먹었어요. 후루룩. 후루룩. 배가 따뜻해지니까 몸도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고요. 괜스레 희망 같은 게 생기기도 하는, 그런 따뜻함 있잖아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시장에서 보았던 엄마 뒷모습을 곱씹으며 생각했어요. 엄마는 삶이 너무 무겁고 고달프겠다. 그래도 내가 엄마를 불쌍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엄마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걸 잊지 말자.
명서시장은 그 후로 엄마가 가장 오래 장사를 했던 시장이에요. 학교를 마치면 시장으로 가서 장사를 마친 엄마와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많았어요. 익숙해지니까 나중엔 슬프기보다는 당연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엄마는 시장에 있는 사람. 시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엄마는 몇 년을 더 같은 일을 하다가 형편이 조금 나아진 후엔 이것저것 다른 일을 했어요. 최근까지도요.
이제는 엄마가 시장을 떠난 지도 10여 년이 지났고, 고등학생이던 저는 어느새 서른 중반이 되었어요. 그사이 결혼도 했고요. 그런데도 저는 여전히 명서시장을 지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눈물이 나요. 엄마가 고생한 기억이 떠올라서 그런 건지. 눈물 날 걸 아니까 일부러 명서시장에 들어가 볼 생각도 안 했어요. 지금 사는 동네와 멀기도 하고, 거기가 아니어도 갈 수 있는 시장은 많으니까요. 그랬는데 있죠. 얼마 전에는 문득 그 시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나가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그 시장에 엄마랑 같이 가면 어떨까.
그런데 엄마는 싫을 수도 있잖아요. 옛날 기억이 지긋지긋할지도 모르고요. 시장에 가보자는 말을 하고 나서도 괜한 말을 꺼낸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엄마는 너무 흔쾌히 그러자고 했어요. 자신도 한번쯤은 가보고 싶었다면서. 시장에 가던 날엔 일부러 십만 원을 현금으로 뽑아 갔어요. 엄마가 사고 싶다는 건 주저하지 않고 다 사주고 싶었거든요. 저에게 엄마는 항상 머뭇거리는 사람. 이걸 살까, 저걸 살까 늘 고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엄마한테 말했죠. 엄마. 오늘은 사고 싶은 거 참지 말고 다 사. 오늘은 그래도 돼.
엄마랑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참 많이도 샀어요. 만두도 사고, 옥수수도 사고, 우뭇가사리, 식혜, 상추, 토마토도 사고요. 엄마가 장사할 때부터 있었던 정육점에 들러서 곰탕도 샀어요. 왜 우리가 어릴 때 다니던 초등학교를 찾아가면 그런 말을 하잖아요. 운동장이 원래 이렇게 조그맸나. 철봉이 이만큼이나 낮았나. 신기한 목소리로 추억을 이야기하듯이. 엄마도 그랬어요. 어머. 저 아지매가 여전히 여기에 있네. 저 아저씨는 못 본 사이 나이가 많이 들었네. 동창을 만난 듯 오랜 안부도 묻고요. 여기저기 구경을 하면서 이제는 리어카 대신 돌돌이 장바구니를 끌고 가는 엄마 모습이 신나 보였어요. 엄마도 지금 엄마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네, 그런 생각이 들 만큼요. 그렇게 시장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와 통통해진 장바구니를 끌고 차로 가는데 엄마가 말했어요.
“딸아. 여기 와보니까 너무 재미있고 좋네. 고생할 때는 몰랐는데 구경해 보니까 참 좋은 시장이야. 다음에 또 와보고 싶어.”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주방에서 혼자 장본 것들을 정리했어요. 동생에게 줄 건 따로 담아두고, 나머지는 보관하기 좋게 소분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요. 토마토는 미리 씻어두려고 봉지에서 꺼냈는데 어쩜 토마토 색깔이 하나같이 너무 예쁜 거예요. 시장에서 살 때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나 싱싱하다니. 기분이 좋아서 일부러 아끼는 채반을 꺼내 다 씻은 토마토를 올려두었어요. 예쁘게 담긴 토마토를 보면서 ‘역시 엄마가 좋은 과일을 잘 골랐네, 엄마도 맛있는 토마토를 먹겠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참 이상한 일이죠.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 거예요. 잘 익은 토마토를 보는데 왜 눈물이 나는 건지.
처음엔 잘 몰랐는데 조금 있으니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그건 아마도 지나왔다는 감각 때문 아니었을까요. 그날 시장을 걸을 때 기분 좋게 다가오던 사람들의 활기에서, 돌돌이 장바구니를 끌던 엄마의 가벼운 발걸음에서, 뽀득하게 씻은 예쁜 토마토에서 느껴지던 지금이 나의 삶이라는 실감. 그리고 어디에 고마운지 모르겠는데 고마운 마음도 들었어요. 시간이 흘러서, 돌아볼 수 있게 되어서, 지금의 내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이제는 그 시장을 지나가도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눈물 말고 다른 기억도 생겼으니까. 이제는 나도, 엄마도 정말로 지나왔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이렇게 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는데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그냥 누군가에게 한번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떤가요. 달님 씨도 이런 기분 느껴본 적 있지 않나요?
내게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기록하는 노트가 있다. 내가 이 삶을 계속 사랑할 수 있도록 해준 말들을 모아둔 노트다. 지금껏 쓴 많은 글들이 이 노트에서 시작되었다. 다음에 쓰게 될 글 역시 여기에 있다. 세 권의 산문집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나의 두 사람』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