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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장례지도사를 인터뷰한 적 있는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너도 들어본 적 있지? 사람에게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감각이 청력이라고. 그래서 계속 말을 걸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하더라. 옆에서 울기만 하면 그 사람은 울음만 듣고 가게 되니까 가슴 아프더라도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들려주라고. 그래야 떠나는 사람 마음도 편해질 수 있다고.”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겪기 전이라 그저 상상만 해볼 수 있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이라도 할 수는 있을까. 죽음을 앞둔 사람이 나라면 어떤 말을 듣고 싶을까. 그날 저녁, 소파에 기대 쉬고 있는 남자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나중에 네가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게 된다면 마지막으로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 것 같냐고. 평소에도 뜬금없이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내게 익숙해진 남자친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다.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겠지. 그래도 마지막 한마디만 할 수 있다면 이 말을 들려줄 것 같아.”
“무슨 말?”
“어디선가 우리 또 만나자는 말.”
그 말을 듣고 안심했던 나를 기억한다. 마지막 순간에 또 만나자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먼일처럼 느껴지는 죽음을 떠올리면서 그랬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눈 지 두 달이 지났을 때 나는 이 말을 들려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즈음 큰 수술을 하게 돼 병원에서 회복을 기다리던 할아버지는 폐렴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연락을 처음 받았을 땐 혹시나 하는 기대도 있었다. 몇 달 전에도 같은 말을 들었지만 할아버지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듯 이겨냈으니까. 꼭 살아서 집에 갈 거라고 말했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임종 면회를 위해 들어간 병실에서 할아버지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이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걸. 일주일 전만 해도 대화를 할 수 있던 할아버지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지난달 내가 사다 준, 할아버지가 마음에 들어 했던 갈색 조끼를 입고서였다.
담당의는 환자가 대답할 수는 없어도 들을 수는 있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마지막으로 전하라고 했다. 코로나로 우리에게 허용된 면회 시간은 십 분 남짓이었다. 의사가 떠난 후 아버지와 나는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몰라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 있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서 그저 눈물만 흘렸다. 우리 중에 먼저 말을 꺼낸 건 아버지였다.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할아버지 얼굴 구석구석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은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지난 50년 동안 해보지 않은 말들을 꺼냈다. 그중엔 정말 사랑한다는 말도 있었다.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짓고 싶었을까. 다음으로 내 차례가 되었을 땐 최대한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항상, 항상 고마웠다고. 덕분에 내가 살 수 있었다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마지막 말은 할아버지가 더 잘 들을 수 있게 귀에 대고 말했다. 할아버지. 제 삶에서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러니까 우리 또 만나요. 알겠죠?
할아버지가 떠나고 가장 납득할 수 없던 사실은 앞으로 다시는 할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사망 판정을 받은 할아버지 손을 잡아보았고, 할아버지를 불러도 대답이 없는 것을 보았고, 흰 천이 덮인 몸을 조심스레 쓰다듬어 보았고, 다 타고 재가 되어버린 것도 보았고, 유골함을 묻은 땅이 뜨지 않도록 발로 여러 번 밟는 일도 했다. 그럼에도 이 모든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할아버지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말이 될 것 같았다.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끝나버릴 수 있는 건지. 비밀로 간직할 테니 누군가 슬며시 내게 말해줬음 싶었다. 할아버지는 사실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그리고 내내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어디로 가야 다시 만날 수 있는 걸까.
가족들은 다양한 곳에서 할아버지를 보았다. 나는 장례 이튿날 밤 손님을 배웅하러 나간 길에 장례식장 입구 계단에 걸터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평소 즐겨 입는 회색 외투에 중절모를 쓰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뒷모습이었다. 체구도 앉은 자세도 비슷했다. 할아버지가 나를 보러 왔구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가가보았다. 오래지 않아 다른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마음이 무너졌다.
같은 날 밤 막내고모는 영정 사진 속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자신이 드디어 미쳤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할아버지가 자신을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고. 그렇게 웃는 아버지 얼굴을 오랜만에 본 고모는 사진을 보며 물었다. 아버지. 우리 가족 다 모이니까 좋아요? 고모는 고모 눈에만 보이는 할아버지 웃음을 대답으로 들었다.
할아버지를 땅에 묻고 내려오는 산길에선 작고 노란 나비 한 마리를 보았다. 앙상한 겨울나무들 사이로 작은 나비가 노란빛으로 눈에 띄었다. ‘어디서 갑자기 나비가 나타난 거지?’ 혼잣말에 옆에서 걷던 여동생이 말했다. 아니야. 언니. 저 나비 아까부터 우리 따라오고 있었어. 사람이 죽으면 나비로 다시 태어난다던데 할아버지 나비 아닐까? 동생의 말에 걸음을 멈추고 나비를 바라보았다. 우리를 따라오던 나비가 머지않아 다른 곳으로 가벼이 날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아버지는 삼우제를 앞두고 할아버지 집에 머물던 밤. 뒷마당에서 할아버지를 보았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날씨가 포근하더니 마지막 날엔 저녁부터 보슬비가 내렸다. 그날 밤 거실에서 술을 마시던 아버지는 담배를 태우고 오겠다고 밖으로 나가선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찾으러 나가보았을 때 아버지는 항아리가 모여있는 뒷마당에서 멍하니 비를 맞고 서 있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는 반가운 기색으로 내 팔을 항아리 쪽으로 이끌며 말했다.
“달님아. 저기 불빛 보이지?”
“불빛? 무슨 불빛 말하는 거야?”
“저기 봐. 저기 반짝이고 있잖아. 내 눈에만 보이는 거야?”
아버지가 보는 것을 나도 보려고 항아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아버지가 본 불빛은 집에서 새어 나온 빛이 항아리 표면에 하얗게 반사된 것이었다.
“저기 저 하얀빛 말하는 거야?”
“그래. 나만 보이는 거 아니지? 네 할아버지가 여기 오신 거야.”
불빛을 할아버지라고 여긴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아버지. 내가 미안해요. 내가 정말 잘못했어요. 이대로 있으면 감기에 걸린다고, 그만하고 집에 들어가자고 말려도 소용없었다.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된 고모들은 비를 맞더라도 아버지를 혼자 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버지에겐 지금 이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그렇게 아버지는 한 시간 가까이 마당에 서서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그 후에 나도 무언가를 보면 할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갑작스레 바람이 불어와 커튼이 부풀어 오를 때. 길을 걷다가 스스럼없이 내게로 다가오는 고양이를 볼 때. 늦은 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환하게 뜬 보름달을 보았을 때.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가 가볍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를 보았을 때.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던 밤, 피아노 건반 덮개가 스르르 떨어졌을 때.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러면 어김없이 눈물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위로를 느끼기도 했다. 어떤 모습으로든 나를 보러 온 할아버지를 상상할 수 있었으므로. 그것은 온전히 나의 믿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으므로.
49재를 며칠 남겨둔 12월의 어느 날엔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 할아버지 생각에 불쑥 눈물이 났다. 마주 앉아 있던 친구가 조심스레 다가와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조금씩 마음을 진정시키며 눈물을 닦고 있는데 친구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달님아. 밖을 봐. 눈이 내린다.” 친구의 말에 뒤돌아보았다. 등지고 있던 유리벽 너머로 꽤 많은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누군가 흔들어놓은 스노볼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신기해라. 너 우니까 할아버지가 눈으로 다녀가시나 보다.”
정말 그런 걸까. 밖으로 나가 친구와 함께 눈보라를 구경했다. 눈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어쩌면 몇 시간을 더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아직 눈이 내리는지 보려고 뒤를 돌아봤을 땐 어느새 모든 눈이 그쳐 있었다. 정말로, 다녀갔다는 말이 어울리는 눈이었다.
두 계절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시간을 자주 떠올린다.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몇 분의 시간을. 그 순간엔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것처럼 우리 다시 만나자는 말을 했지만 할아버지가 떠난 직후에는 그 말이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우리가 또 만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믿을 수 있다고, 살아가기 위해선 믿고 싶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것을 같이 먹고 싶다거나, 나란히 걷고 싶다거나, 다시 한번 옆에 앉고 싶다거나, 전화를 걸어보고 싶다는 바람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직후에는 이전과 다르게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기다리고 있다. 고양이로든. 눈으로든. 빛으로든. 바람으로든.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 했던 새로든. 어느 날 꿈에서는 예전 모습 그대로로.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어도 다가올 시간을 믿을 수는 있다. 그렇게 우리는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내게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기록하는 노트가 있다. 내가 이 삶을 계속 사랑할 수 있도록 해준 말들을 모아둔 노트다. 지금껏 쓴 많은 글들이 이 노트에서 시작되었다. 다음에 쓰게 될 글 역시 여기에 있다. 세 권의 산문집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나의 두 사람』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