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좋아하는 장면 속에 내가 들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개와 함께 사는 일입니다. 개와 함께 아침에 일어나, 동시에 기지개를 켜고, 거실에 내린 아침 햇볕 아래로 우리는 새롭게 모여듭니다. 아침 인사를 밝게 나누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물 한 잔을 마시는 동안에 개에게 아침 대용으로 간식 하나를 건넵니다. 기운차게 받아가는 모습에서 오늘의 힘을 얻습니다. 하루를 시작하자마자 좋아하는 일로 집 안이 가득 채워집니다.
하지만 단지 좋아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한 지붕 아래에서 나와 개는 서로 다른 속도로 시간을 보냅니다. 누가 우리의 태엽을 다르게 감아둔 걸까요. 사는 속도가 확실히 다르단 걸 눈치채는 날이면, 개의 등에 조용히 손을 갖다 대고 싶어집니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태엽을 잠시나마 잡아두고 싶은 심정으로요. 좋아하는 시간은, 너무나 좋아하기에 어김없이 낮은 마음이 되어버립니다. 속절없다는 형용사는 꼭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아닐까요.
지금을 곧장 추억하는 게 바로 개와 사는 일입니다. 그로 인해 저는 자주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지난 모습을 매 순간 곱씹으며 뒤돌아봅니다. 같이 있으면서도 같이 있던 어제를 자꾸만 추억합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마음은 이렇게 생겨납니다. 언젠가는 보고 싶은 마음만이 덩그러니 남아 아무도 누워 있지 않은 이불을 쳐다보게 되겠지만, 그 빈자리에 내가 기억하는 모습을 또박또박 그려 넣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도록 매일의 마음속에 아픈 자국으로 나의 개를 그려 넣고 있습니다. 이 또한 무척 좋아하는 일입니다.
나에게는 나이 든 개가 있어요*
잘 먹지 않고
잘 걷지도 못하는
하루 종일 눈을 감고 있는
사람에게 1년이
개에게는 왜
7년인지
나는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나에게는 늙은 개가 있어요
부르면 천천히
눈을 떠주는
* 미야가와 히로의 동화 「나에겐 검둥이란 개가 있어요」를 변용함.
- 고영민 「나이 든 개」, 창비시선 435 『봄의 정치』(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