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도요 씨께.
도요 씨, 서울은 공기가 부쩍 차가워졌지만 맨손을 내놓기에 손이 시리지 않은 겨울의 초입이에요.
오늘 퇴근길엔 올겨울 첫 귤 트럭을 만났습니다.
겨울을 좋아하는 저는 귤 트럭을 만나면 아 비로소 겨울이구나, 하고 안도하게 돼요.
게다 올해는 제주에서 온 도요 씨를 서울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더 기뻤답니다.
트럭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11월의 노란 귤은 나무에 걸린 5월의 연등처럼, 12월의 크리스마스 장식 전구처럼, 이 도시에서 보기 드물게 예쁜 것이라 생각해요. 크리스마스트리와 연등은 조명이 내뿜는 빛으로 환한 것이지만 귤은 그 자체로 선명하고 진한 주황빛을 가지고 있지요.
이곳의 나무들이 잎을 떨어뜨려 제 몸을 드러낸 채로 서 있을 때 남쪽의 귤나무는 초록 잎 사이로 이렇게 환하고 달콤한 열매를 맺고 있다니 신기합니다. 우리가 멀리 있긴 한가 봐요.
“한 망 주세요.” 했더니 트럭 주인이 “한 망만 드려요?” 하고 물었습니다. 한 망에 2,000원 두 망에 3,000원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저는 그럼 꼭 두 망을 삽니다.
모처럼 일거리를 집에 가져가지 않는 금요일이라 가방은 넉넉했지만 귤을 가방에 넣지 않고 왼손, 오른손에 한 망씩 쥐고 걸었습니다. 양손에 나누어진 그다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무게에 기분이 좋았어요.
도요 씨, 이번에도 제주의 다정한 이웃들이 귤을 나눠주셨나요? 혹시 제주에서 귤을 따고 있나요? 제가 먹고 있는 귤이 도요 씨가 딴 귤은 아닐까요?
작업하고 계신 책의 안부도 궁금합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 그 누군가가 저라면 너무나 기쁠 것 같아요.
서울에서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얘기해주세요. 12월, 제주에 갈 때 챙겨서 가겠습니다.
그럼, 겨울 제주의 소식도 전해주세요.
서울의 비둘기로부터.
눈이 내리네
노란색 택시가 지나가네
노란색 택시가 지나가는 동안
근처의 눈밭은 노란색으로 빛나네
건너편 길가에서 우두커니 택시를 바라보던
늙은 은행나무 한그루도
벗은 온몸이 반짝 노란빛으로 빛나네
까페 후두둑의 유리창 앞 인도에서
꽃다발을 안은 당신이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넘어질 때도
노란색 택시가 지나갔네
택시 한대가 세상을 노란빛으로 바꿔놓았어
당신의 중얼거림도 노란빛으로 빛났네
얼음으로 빚은 따뜻한 술병들이
샤갈의 마을의 밤 주점을 들썩이고
세번째 네번째의 당신이 노오랗게 미끄러지며
보도 위에 입맞춤하네
노란색은 사랑이 시작되는 빛깔
사랑 쪽으로 몸을 눕힌 생명들의 온도
노란빛의 흉터 한 묶음을 안고 지나가는
당신의 뒤로 눈이 내리고
노란빛의 도시가
노란빛의 환호가
우리 영혼을 흔드네
- 곽재구 「노란색 택시」, 창비시선 346 『와온 바다』(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