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은 사람을 더 사람답게 만든다. 좋아하는 것에 매달리고 원하는 것에는 어떻게든 손을 쭉 뻗게 하고, 또 그것을 잃으면 안타깝기만 하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우리는 대부분 어릴 때부터 꽤 여러가지 수집을 해왔다. 엄마에 의해 젖병과 기저귀를 수집해왔고, 내 마음이 이끌려 바비인형을, 스티커를, 블록을, 장난감 미니카를 유행을 따라가며 수집해보지 않았던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학생 때는 스티커를 모았고, 일본 사쿠라펜을 색깔별로 모았으며, 고등학생이 되고서는 맥도날드 해피밀 장난감 세트에 집착했다. 어른이 된 지금은 딱 두 가지, 책과 그림만 모은다. 다른 것까지 모으면 생활에 무리가 따라서 책과 그림만 모으기로 결심한 지가 꽤 되었지만 마음먹은 대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화가들 중에서도 수집을 좋아한 사람들이 여럿 있다. 유년시절을 페루에서 보낸 폴 고갱은 원시적인 느낌이 가득한 페루식 도자기를 모았고, 우끼요에(浮世?)에 매력을 느낀 반 고흐는 일본식 털실과 일본에서 넘어온 포장지도 모았다. 그리고 내가 유독 애정하는 화가 조르조 모란디는 평생 그릇을 모으며 그것들을 화폭에 담는 것이 삶의 숙명인 듯이 살아갔다. 그리고 여기 죽을 때까지 ‘상자수집’에 집착한 미국 예술가가 있다.
미국의 조각가인 조셉 코넬(Joseph Cornell, 1903~72)의 집은 수집한 상자로 늘 빼곡했다. 그리고 그는 그 상자들에 아주 오래전부터 모아온 다양한 물건들을 멋지게 배치해서 작품을 완성했다.
오래된 신문들이 콜라주 되어 있고 한 마리의 나무 앵무새가 상자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새 위의 봉은 이 상자가 ‘작은 장롱이 아닐까?’ 상상하게 만들고, 아래에 떨어진 둥근 물건은 새알이거나 작은 지구로도 보인다.
조셉 코넬은 17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부터 집안 생계를 꾸려야 했다. 섬유회사 직원으로 옷감 파는 세일즈를 했던 그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고된 일과 뒤 퇴근길에 맨해튼의 헌책방과 골동품 가게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그는 열심히 일을 해서 모은 돈 대부분을 생활비에 보태고 자신을 위해서는 조금씩 돈을 아껴 골동품과 레코드판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줄리앙 레비 화랑에서 에른스트의 콜라주 소설집 『백두녀(百頭女)』를 본다. 그리고 그의 작품 중 하나에 영감을 얻어 작업을 시작한다. 그의 나이 27세의 일이었다.
이듬해 조셉 코넬은 같은 화랑에서 열린 ‘제1회 미국 슈르리얼 리스트전’에 작품을 출품한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의 영감의 원천을 찾는다. 그것은 바로 살바도르 달리의 「빛나는 욕망」이다. 그는 달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상자’에서 영감을 얻은 뒤로 줄곧 ‘상자’ 작업 매달린다. 그리고 틈틈이 모은 아주 작은 물건들로 콜라주하고, 배치하여 상자 속을 마치 연극무대처럼 꾸미기 시작한다. 이런 작은 상자들은 그의 아픈 동생의 장난감이 되기도 했다. 병들어 밖에 나가지 못하는 동생에게 그의 상자는 또다른 작은 세계가 되어준 것이다.
그의 상자 속 세상들을 들여다본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나고, 또 만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들이 부딪치며 새롭고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현실에서 재료를 얻었지만 다분히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2차세계대전 전후로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뉴욕으로 건너온 유럽의 많은 예술가들 중에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많았다. 코넬은 그들과 끈끈한 친분을 가지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구축하는데 여념이 없던 코넬은 상자 안 아주 오래된 사진, 지도,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을 배치했다. 깨진 유리조각은 산이 되고, 코르크 공은 행성으로 변했으며 버려진 금속 조각들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코넬의 상자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고, 소년소녀 시절 좋아한 문학과 꿈과 이상을 떠올리기도 했다.
1950년대 중반 이미 만들어진 물질들을 콜라주해서 팝아트의 거장이 된 ‘라우센버그’와 ‘제스퍼 존스’ 역시 조셉 코넬로부터 영향을 받았노라고 할 만큼 그는 후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쌍블라주’(조립, Assemblage)는 1953년 장 뒤비페가 피카소와 브라크의 콜라주보다 더 많은 물질들을 입체적으로 부착하는 작품을 칭하는 단어다. 조셉 코넬 역시 오래되거나 버려진 물건들을 서로 조합하여 아쌍블라주했다. 훗날 영국의 평론가 로렌스 알로웨이는 버려진 물건들을 서로 조합하는 창작 행위를 정크아트(Junk Art)라 불렀다. 에른스트와 입체주의 화가들의 콜라주로부터 연결된 이 튼튼한 실은 아쌍블라주로 정크아트로 엮이며 현대에 이르러 활발한 미술 장르로 자리잡았다.
마르셀 뒤샹 역시 코넬의 작품을 사랑했다. 언어와 사물을 활용한 비밀스럽고 의미가 중첩되는 코넬의 작품 미학과 뒤샹의 지향점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당시 한 평론가는 코넬의 작품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복잡한 즐거움을 위한 장난감 상점’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 속에서 정신없이 헤맬 때 나는 가끔 미지의 세계로 가는 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그럴 때마다 코넬의 상자는 늘 그 자리에서 비밀스러운 꿈을 꾸고 있다. 내게 코넬의 상자는 언제라도 기꺼이 들어가보고 싶은 마법의 상자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곳에 손을 넣어 꺼낼 수 있고, 다음 원하는 것으로 다시 채워지는 그런 상자 말이다. 숨고 싶은 날엔 상자 속 세상에 들어가 지내고, 나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나오는 제 3의 공간이 조셉 코넬의 작품이다.
평범할 수 있는 ‘수집’이라는 그의 취미는 이토록 재미있는 예술을 탄생시켰다. 수집가들이 세상을 바꾼 이야기는 의외로 많지만 수많은 수집이 예술작품이 된 이야기는 언제들어도 경이롭다. 오늘은 우리집과 내 마음을 한번 찬찬히 둘러보는 건 어떨까, 내가 가장 많이 수집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보이는 것도 좋고, 보이지 않는 것을 수집하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이다. 왠지 조셉 코넬 덕분에 오늘은 추억을 한가득 수집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