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가객. 자는 대재(大哉). 남원 출신. 숙종․영조 당시에 김천택(金天澤) 등과 활동을 하여 ‘여항육인(閭巷六人)’이라 불렸던 창곡의 명인이다. ≪해동가요≫(박씨본) 부록으로 실려 있는 ≪영언선(永言選)≫의 기록에 따르면 1715년 봄에 서울에서 달성(達城:지금의 大邱)으로 와서 한유신(韓維信) 등에게 여러 해 동안 창곡을 가르쳤고, 그 뒤 심생(沈生)을 따라 밀양으로 갔다가 염병으로 객사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