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1년(현종12)~1729년(영조5).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회백(晦伯), 호는 삼금당(三錦堂). 1705년 무과에 급제하여 감찰을 거쳐 회령부사가 되었다. 전라도병마절도사로 있을 때 국고를 탕진하였다는 죄목으로 탄핵을 받았으나, 영조의 신임으로 무사하였다. 1728년 안성군수로 부임하여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아우 제만(濟萬)과 함께 안성․죽산에서 반란군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분무일등원종공신에 훈록되었다. 이어 그해 황해도병마절도사를 지내고 그 이듬해 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