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8년(선조21)~1653년(효종4).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태원(太原), 자는 중윤(仲潤), 호는 돈암(遯菴).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찾아가 이황(李滉)이 남긴 장서 수백권을 열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현광을 찾아가 학문을 질문하고 용악산(龍岳山)에 들어가 일생 동안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학행으로 사직참봉(社稷參奉)에 임명된 것을 비롯,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성균관사업(成均館司業) 등에 여러 차례 천거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심성이기(心性理氣)를 깊이 연구하였으며, 특히 ≪주역≫에 통달하였다. 당대의 석학 김집(金集)과도 학문적인 토론을 교환하였으며, 세상 사람들이 관서부자(關西夫子)라 칭하여 존경하였다. 저서로는 ≪돈암전서(遯菴全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