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9년(인조7)~1711년(숙종3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개국공신 남재(南在)의 후손으로, 송준길(宋浚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56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대사간․승지를 역임하고 함경도관찰사가 되어 유학을 진흥시키고 변방수비를 다졌다. 서인(西人)으로서 남인(南人)을 탄핵하다가 남해(南海)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이 실각하자 도승지․부제학․대제학․대사간을 역임하였다. 서인이 노소론(老少論)으로 분열되자 소론의 영수가 되었으며, 영의정까지 올랐다. 말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경사와 문장을 일삼았다.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으며 저서로 ≪약천집(藥泉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