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2년(선조15)~1654년(효종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택지(澤之), 호는 회곡(晦谷)․대몽(大夢). 1606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의 난정(亂政)으로 과거를 단념하고 용인에 은거하였다. 인조반정 후 여러 번 지방관직을 지내면서 일을 바르게 처리하고 선정을 베풀어 부임하는 곳마다 송덕비가 세워졌다. 병자호란 때에는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하였다. 시호는 정민(貞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