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3년(중종18)~1567년(명종22).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중보(仲輔), 호는 개암(介庵)․송암(松庵).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549년 진사가 된 뒤, 벼슬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 오직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남계서원(藍溪書院)을 건립하여 정여창(鄭汝昌)을 제향하였으며, 영남유생 33인의 소두(疏頭)가 되어 정여창의 신원을 청하기도 하였다. 학행으로 추천되어 소격서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저서로 ≪개암집(介菴集)≫이 있으며, 여기에 시조 3수가 실려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