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4년(성종3)~1068년(문종22). 고려 전기의 문인.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호연(浩然), 호는 성재(惺齋)․월포(月圃)․방회재(放晦齋). 1005년에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우습유(右拾遺)가 되었다.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지내고, 정종 초에는 지공거(知貢擧)로서 과거를 주관하였다. 1047년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서 율령서산(律令書算)을 정하여 고려 형법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관직이 내사령(內史令)에 이르렀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사숙(私塾)인 구재학당(九齋學堂)을 열어 인재 양성에 힘썼다. 문하생은 그의 시호를 따서 문헌공도(文憲公徒)라 칭하였다.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 능해 해동공자(海東孔子)로 추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