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년(광해군9)~1703년(숙종29). 조선 후기의 문인. 본관은 흥성(興城), 자는 익재(益哉), 호는 옥경헌(玉鏡軒).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서 시문을 짓고 강학을 베풀며 일생을 마쳤다. 1670년에는 나라에 흉년이 들어 민생이 어려워지자 조정에 <구폐소(救弊疏)>를 올렸다. 만년에는 향리에서 은일자적 하는 삶을 구가하며 이때의 생활을 소재로 삼아 국문 시가를 창작하기도 하였는데 <고산별곡(孤山別曲)> 10수가 바로 그것이다. 이외에도 300여 수의 한시와, 10여 편의 문을 남겼다. 저서로 ≪옥경헌유고(玉鏡軒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