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3년(광해군5)~?. 조선 중기의 역관. 본관은 인동(仁同). 본래 역관 집안의 자제로 1639년 역과에 합격하여 역관으로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갈 때, 통역으로 수행하여 6년간 머무르기도 하였다. 그가 남긴 시조 작품도 역관 신분으로 사행하면서 느낀 감회를 표현하고 있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