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7년(선조20)~1638년(인조1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묵소(默所). 김상용(金尙容)의 사위, 효종의 장인,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09년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주서 등을 지내다가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해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녹훈되고 대사간․대사성․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이괄(李适)의 난 때 왕을 공주로 호종한 공으로 이듬해 신풍군(新豊君)에 책봉되어 이조참판․부제학․대사헌 등을 지냈다.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로 왕을 호종한 후, 대제학으로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를 겸임했고, 대사헌․좌부빈객(左副賓客)․예조판서․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병자호란 때 공조판서로 최명길(崔鳴吉)과 더불어 강화론을 주장하였다. 이후 예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임명되었다. 일찍이 양명학을 접한 그는 당시 주자학의 편협한 학문 풍토를 비판하였으며, 천문․지리․의술․병서 등 각종 학문에 능통했고, 서화와 특히 문장에 뛰어나 이정구(李廷龜)․신흠(申欽)․이식(李植) 등과 더불어 조선 문학의 사대가(四大家)라는 칭호를 받았다. 저서로 ≪계곡만필(谿谷漫筆)≫․≪계곡집(谿谷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