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6년(인조24)~1735년(영조11).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운거(雲擧). 1699년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으로 있을 때 소론 김일경(金一鏡) 일파에게 몰려 파직되는 등 일찍부터 노소당쟁(老少黨爭)의 와중에서 어려움을 겪었으나 다시 기용되어 경상도좌병사를 거쳤다. 신임사화 때 노론 김창집(金昌集)의 당으로 연루되어 함경도 종성에 유배, 2년 뒤 영조가 즉위하자 풀려 나왔다. 그 뒤 군기시제조(軍器寺提調)․어영대장․훈련대장․형조참판․우포도대장 등을 역임한 뒤, 이듬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한성부좌윤으로, 이어 총융사가 되어 반란군 토벌에 큰 공을 세웠다. 1729년 부사직으로서 과거제(科擧制)의 폐단과 모순을 지적, 상소하였다. 시호는 무숙(武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