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7(효종 8)~1706(숙종 3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윤장(潤章)이다. 선조의 부마인 달성위(達城尉) 서경주(徐景霌)의 손자이자 직장(直長)을 지낸 서진리(徐晉履)의 아들이다. 송시열(宋時烈)에게 학문을 배웠다. 1687년 사마시에서 진사 3등으로 합격하였다. 이후 음보로 등용되어 광흥창주부 등을 지냈다. 1689년 원주(原州)에 사는 유생 안전(安洤) 등이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을 문묘에서 축출하고 송시열을 처단할 것을 상소하자 이에 반박하는 상소를 올렸다. ≪금강산․사군유산기(金剛山․四郡遊山記)≫에 시조 52수를 남겼으며, 가사 ≪금강별곡(金剛別曲)≫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