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1년(성종12)~1548년(명종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번중(蕃仲), 호는 돈재(遯齋).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다. 1501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나 갑자사화로 영광(靈光)에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풀려나왔다. 1507년 문과에 급제하여 중앙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좌의정까지 올랐다. 그러나 을사사화 때 윤원형(尹元衡) 등이 실권을 장악하면서 그들에게 미움을 받아 좌천되었고 마침내 황해도 장연(長淵)으로 귀양갔다가 죽었다. 필법에 뛰어났고 글씨․그림․음률에 정통하여 3절(三絶)이라 불렸다. 저서로 ≪돈재집(遯齋集)≫․≪식료찬요(食療纂要)≫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