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9년(충선왕1)~1397년(태조6).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이헌(怡軒). 1336년 문과에 급제하여 첨서밀직(簽書密直)․정당문학을 역임하였다. 신돈(辛旽)이 처형당하자 그 당류로 지목되어 유배를 갔다가 다시 발탁되었다.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옹립한 정변에 아들 성석린(成石璘)이 참여하여 공신이 되었으나, 이성계(李成桂)가 등극하자 벼슬을 버리고 포천 계류촌(溪流村)에 은거하였다. 태조가 고려 구신(舊臣)의 회유책으로 검교문하시중, 창녕부원군에 봉하였으나 고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