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5년(중종30)~1598년(선조31).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호원(浩原), 호는 묵암(默庵)․우계(牛溪). 성수침(成守琛)의 아들이다. 1551년 생원․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지만 복시에 응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이이(李珥)와는 평생지기였다. 1594년 유성룡(柳成龍)과 함께 일본과의 화의를 주장하다가 관직을 삭탈당하고, 인조 때 복직되어 좌의정에 올랐다. 이이와 6년간에 걸쳐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한 논란을 벌였고, 성리학에 있어서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이론적 근거를 닦았다. 저서에 ≪우계집(牛溪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