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5년(영조1)~1799년(정조2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치행(穉行), 호는 송하옹(松下翁). 1766년 문음(門蔭)과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처음 벼슬길에 나간 뒤 1781년 선공감주부․예조정랑․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책례도감상례(冊禮都監相禮) 등을 역임하였으며, 그 뒤 호조참의․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를 지냈다. 초서와 예서에 능하였으며, 풀․대나무 등의 묵화를 잘 그렸다. 서예 유작으로 <유점사풍악당대사비(楡岾寺楓嶽堂大師碑)>, <이보혁무신기공비(李普赫戊申紀功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