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1년(연산군7)~1572년(선조5).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健中), 호는 남명(南冥). 성년기에 두 차례의 사화를 경험하면서 훈척 정치의 폐해를 직접 목격한 탓에 모든 벼슬을 거절하고 평생을 산림처사(山林處士)로 자처하며 오로지 학문과 제자들 교육에만 힘썼다. 그의 사상은 노장적(老莊的) 요소도 다분히 엿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성리학적 토대 위에서 실천궁행을 강조했으며, 실천적 의미를 더욱 부여하기 위해 경(敬)과 아울러 의(義)를 강조하였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 ≪남명집≫, ≪파한잡기(破閑雜記)≫ 등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남명가>, <권선지로가(勸善指路歌)> 등이 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