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5년(영조1)~1790년(정조14).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회보(晦甫), 호는 만보정(晩葆亭). 1738년 영조의 딸과 결혼, 금성위(錦城尉)에 봉해지고, 품계가 수록대부(綏祿大夫)에 이르렀다. 글씨를 잘 썼으므로 나라의 경애사(慶哀事) 때 여러 차례 금옥보책 명정서관(金玉寶冊銘旌書官)으로 임명되었다. 몸가짐에 절도가 있었으며, 검소하였고 또한 풍류와 운치가 있었다. 서예 유작에 경기 장단(長湍)에 있는 <국구오흥부원군김한구표(國舅鰲興府院君金漢耈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