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4년(효종5)~1689년(숙종1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사원(士元), 호는 정재(定齋). 박세당(朴世堂)의 아들이다. 1677년 문과에 장원을 하여 전적(典籍)을 거쳐 예조좌랑이 되었는데, 시관(試官)으로서 출제를 잘못했다는 남인(南人)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풀려났다. 기사환국 때 서인(西人)을 대변,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를 강력히 반대하다가,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진도(珍島)에 유배 도중 노량진(鷺梁津)에서 죽었다. 학문과 문장에 능하고 글씨도 잘 썼다. 저서로 ≪정재집(定齋集)≫․≪주서국편(周書國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