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3년(선조6)~1655년(효종6).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무안(務安), 호는 동천(東川). 박선장(朴善長)의 아들이다. 외조부로부터 글을 배우고 학문에 전심하며 평온한 삶을 살았다. 광해군 당시 권신 이이첨(李爾瞻)이 일당에 끌어들이려고 음모를 써서 회유하였으나, 끝내 절의를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잡초를 뽑고 곡식을 가꾸는 데 비유하여 거절하였다. 그의 저서로 ≪동천일고(東川逸稿)≫가 있으며, 여기에 <서유가(鋤莠歌)> 1수가 실려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