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3년(성종24)~1562년(명종17). 조선 전기의 학자․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택지(澤之)․백유(伯濡), 호는 용암(龍巖). 1519년 진사가 되고 명종 때 부사용(副司勇)을 지냈다. 만년에 이황과 서신으로 연락하였고, 이황에게 저서인 ≪격몽편(擊夢編)≫․≪자양심학지론(紫陽心學至論)≫ 등을 보내 정정(訂正)을 구했다. 죽은 뒤 이황은 갈문(碣文)을 지어 그의 학문과 덕행을 찬양하였다. 효행으로 선조 때 고향에 정문이 세워졌다. 저서로 ≪과행록(果行錄)≫․≪용암일기(龍巖日記)≫․≪용암문집(龍巖文集)≫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