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7년(명종2)~1634년(인조1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梧里). 1569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광해군 때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여 유배당하였다. 인조반정 후에 다시 영의정까지 올랐다가 은퇴했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남인(南人)에 속했으나 성품이 원만하여 정적(政敵)들에게도 호감을 주었고, 시민적인 인품으로 오리정승(梧里政丞)이라 불렸으며 많은 일화가 전한다. 저서로 ≪오리집(梧里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