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년(중종14)~1592년(선조2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대용(大用), 호는 매암(梅巖). 이현보(李賢輔)의 아들이며,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43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과업(科業)에는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의 연구에만 치중하였다. 후일 천거에 의하여 왕자사부(王子師傅)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에는 격문을 지어 의병의 궐기를 촉구하기도 하였으나 난중에 죽었다. 저서로 시문집인 ≪매암집(梅巖集)≫이 있으며, 여기에 <분천강호가(汾川講好歌)> 6수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