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9년(현종10)~1745년(영조2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덕재(德哉), 호는 도곡(陶谷). 1694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교리(校理) 등을 거쳐 형조․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신임사화(辛壬士禍)에 연루되어 운산(雲山)에 유배되었다. 영조 즉위 후에 우의정에 올랐으나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쫓겨났다가 다음 해 박필몽(朴弼夢) 등의 반란이 있자 중추부판사가 되어 난을 평정하고 영의정이 되었다. 청백리로도 알려졌지만 글도 잘해 ≪경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하였고, 글씨도 잘 써 여러 비문에 필적을 남겼다. 저서로 ≪도곡집(陶谷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