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1년(성종22)~1553년(명종8).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 1514년 문과에 급제, 사간․직제학을 거쳐 좌찬성이 되었다. 조선전기의 가장 유명한 성리학자로 특히 주리(主理)의 학설은 이황(李滉)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28세 때 조한보(趙漢輔)와 논쟁한 ‘무극․태극설’로 유명하다. 저서로 ≪회재집(晦齋集)≫이 있고, 편서에 ≪중용구경연의(中庸九經衍義)≫, ≪봉선잡의(奉先雜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