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0년(중종15)~1578년(선조1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진(季眞), 호는 청련(靑蓮). 이의건․최경창․백광훈 등에게 사사했다. 1555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주서․정언․이조정랑 등을 거쳤으며 벼슬이 호조판서에 이르렀다. 청백리에 녹선 되었고, 1573년 주청사(奏請使)로 명나라에 가서 ≪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후손으로 잘못 기재된 일을 바로잡은 공으로 죽은 뒤인 1590년 광국공신 2등, 연양군(延陽君)에 추봉되었으며,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문장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아 사림의 추앙을 받았다 한다. 저서로 ≪청련집(靑蓮集)≫이 있으며, 시조 작품으로 <소상팔경가(瀟湘八景歌)>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