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1년(명종16)~1613년(광해군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한음(漢陰)․쌍송(雙松)․포옹산인(抱雍散人). 이산해(李山海)의 사위이다. 1580년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교리 등을 지내고 예조참판․대제학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와의 외교 분야에서 활약하였으며 전란 후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602년 영의정에 승진되었다. 1613년 영창대군의 처형과 폐모론(廢母論)을 반대하다가 삭탈관직 되어 양근(楊根)에 내려가 죽었다. 남인(南人) 출신으로 어렸을 때 이항복(李恒福)과 절친한 사이로 지내면서 기발한 장난을 잘하여 야담(野談)으로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저서로 ≪한음문고(漢陰文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