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9년(광해군11)~1672년(현종13).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문(翼文), 호는 존재(存齋). 이현일(李玄逸)의 형이다. 외할아버지 장흥효(張興孝)에게 ≪맹자≫의 존심양성(存心養性)의 설을 배우고 일찍이 성리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했으나, 병자호란을 겪은 뒤 성리학을 중단하고 병서를 읽어 산천의 지형과 주변 국가의 정황을 조사하여 효종의 북벌계획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효종 승하 후 ≪근사록≫․≪심경≫․≪성리대전≫․≪역학계몽≫․≪주자절요≫․≪퇴계집≫ 등을 연구하여 성리학의 일가를 이루었다. 또한 예를 존중하여 ≪가례≫를 참작, 상제대요(喪祭大要)와 절목을 궁진정리(窮盡整理)하여 습속의 폐단을 시정하였다. 뒤에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저서로는 ≪존재집(存齋集)≫, ≪구인략(求仁略)≫, ≪홍범연의(洪範衍義)≫가 있으며, 시조 작품으로 <저곡전가팔곡(楮谷田家八曲)>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