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1년(명종6)~1627년(인조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칙(景則), 호는 석탄(石灘). 1582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종묘서봉사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군 300명을 거느리고 적과 싸운 공으로 사옹원직장에 올랐으며, 이어 사재감주부․공조좌랑․고부군수 등을 지냈다. 1596년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광주목사(廣州牧使)․남원부사․해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광해군 즉위 후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등의 폭정에 대해 극간하다가 회령(會寧)으로 유배되었다. 이 5년간의 유배생활 중에 <사우가(四友歌)>와 단가 6수 등 모두 10수의 시조를 지었다. 인조반정 이후 형조참판에 올랐으며, 정묘호란으로 왕을 호종해 강화로 가던 도중 병으로 죽었다. 저서로 ≪석탄집(石灘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