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9년(선조12)~1652년(효종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릉(子陵), 호는 현기(玄磯). 1610년 문과에 급제하여 배천군수․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그가 교유한 사람들이 대체로 남인(南人)들이었기 때문에, 이와 연관되어 서인(西人)들의 지목을 받아 여러 차례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에 은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