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7년(숙종3)~1735년(영조11).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원백(遠伯). 윤증(尹拯)의 문인이다. 힘과 담략이 뛰어났으며 1705년 무과에 급제하여 평안도병마절도사․함경남도병마절도사 등을 지내면서 친기위(親騎衛)의 인원증액과 봉수제도의 개선을 건의하는 등 군제개혁에 관심을 기울였다. 경종의 신임을 받아 수원부사․우포도대장․충청도병마절도사 등을 거쳐 총융사․한성부우윤, 어영대장 등을 지냈다.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 관문을 잘 지킨 공으로 분무공신(奮武功臣) 2등에 책록되고 벼슬이 병조판서에까지 올랐다. 지리의 이용과 기계의 제조, 여러 무술에 두루 능통하였다. 저서로 ≪관서절요(關西節要)≫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