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1년(연산군7)~1570년(선조3).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陶叟). 1534년 문과에 급제하여 박사․전적․성균관사성을 지내고, 이어 단양군수(丹陽郡守)․풍기군수(豊基郡守)를 지낸 뒤 낙향하였다. 1552년 홍문관교리에 임명되었으나 신병을 이유로 사퇴하였다. 그 뒤 30여 차례나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대사성․참의․경연참찬관 등을 잠시 지냈을 뿐 대부분 사퇴하고 향리로 돌아가 본격적인 학문 연구에 전력하여 활발한 저술활동과 강학(講學)에 힘썼다. 그의 사상은 정이와 주희(朱熹)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다른 학문을 비판․배척하였다. 한편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창설,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에 힘썼다.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문묘 및 선조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그의 유저를 망라한 ≪퇴계전서(退溪全書)≫가 전하며 시조 작품으로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