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2년(공민왕11)~1431년(세종13).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우정(虞庭), 호는 형재(亨齋). 이조년(李兆年)의 손자이다. 1377년 문과에 급제해 경순부주부(慶順府注簿)에 보직, 그 뒤 사헌지평․성균사예․전교부령(典校副令)․종부영(宗簿令)․밀직사우부대언(密直司右副代言) 등을 거쳐 예문제학을 지냈다. 제2차 왕자의 난 때 방원(芳遠:太宗)을 도와 1401년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이 되고, 판사평부사(判司評府事)로서 왕명으로 주자소(鑄字所)를 설치, 동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만들었다. 1412년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으로 진봉, 1414년 우의정에 승진되었으나, 황희(黃喜)와 함께 충녕대군(忠寧大君:世宗)의 세자책봉을 반대하다 성주에 안치되었다. 저서로 ≪형재시집(亨齋詩集)≫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