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6년(인조24)~1701년(숙종2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이로(耳老), 호는 정재(靜齋). 허목(許穆)의 문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함이 남달라 10세에 한시로 이미 주위의 칭찬이 대단하였다. 1670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유가 되고, 이어 봉상시봉사․승정원주서를 거쳐 홍주목사로 나갔다. 경신대출척으로 파직되어 아버지 원정(元禎)의 유배지 초산에 따라갔다. 이후에 복관되어 우승지․전라도관찰사․부제학․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 진정(賑政)에 힘쓰고 선정을 베풀어, 도민들이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영사비(永思碑)를 세웠다. 남인 과격파에 속하는 인물로 숙종 초년에는 왕실 전례를 그르친 송시열(宋時烈)의 죄를 종묘에 고하자는 공세를 폈고, 경신환국 후에 복귀되었을 때는 그 사건을 주동했던 서인 인물들을 처벌하는 데 앞장섰다. 저서로 ≪정재집(靜齋集)≫․≪서전차의(書傳箚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