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9년(선조2)~1636년(인조14).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중립(中立), 호는 선오당(善迃堂). 이현보(李賢輔)의 증손, 이덕홍(李德弘)의 아들이다.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일찍이 벼슬할 것을 단념하고 학업에만 전념하였다. 그의 아우가 광해군 때 벼슬에 나아가자 그를 만류하려고 <오로가(烏鷺歌)>․<조주후풍가(操舟候風歌)>를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만년에 오천(迂川)의 하류에 오계서당(迂溪書堂)을 짓고 후진양성에 힘써 많은 학자들을 길러내었다. 친상 중 집상하느라고 병을 얻어 죽었다. 저서로 ≪선오당일고(善迂堂逸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