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7년(세조13)~1555년(명종1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비중(菲仲), 호는 농암(聾巖)․설빈옹(雪鬢翁). 홍귀달(洪貴達)의 문인이며, 후배인 이황(李滉)․황준량(黃俊良) 등과 친하였다. 1498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으로 서연관(書筵官)의 비행을 논하다가 안동(安東)에 유배되었다. 중종반정으로 지평에 복직된 후, 밀양부사․충주목사․성주목사․병조참지․동부승지․부제학․경상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1542년 호조참판으로 있을 때 은퇴를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자 병을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저서로 ≪농암집(聾巖集)≫이 있으며, <어부가(漁父歌)>․<효빈가(效嚬歌)>․<농암가(聾巖歌)> 등의 시조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