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9년(선조32)~1678년(숙종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숙(慶淑), 호는 수헌(壽軒). 정윤위(鄭允偉)를 사사하였다. 기축옥사에 부가 희생된 사실을 알고 20세에 고향인 청도로 돌아와 학문에 전념하고자 하였으나 정구의 하세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장현광(張顯光) 등과도 교유하였다. 저서로 ≪잡훼원집(雜卉園集)≫과 ≪수헌집(壽軒集)≫이 있다. 시조 작품으로 ≪잡훼원집≫에 수록된 <오대어부가구곡(梧臺漁父歌九曲)>, <속어부사오장(漁父詞五章)>, <어부별곡삼장(漁父別曲前三章)>, <어부별곡후삼장(漁父別曲後三章)>으로 구성된 <오대어부가(梧臺漁父歌)>가 ≪잡훼원집≫에 수록되어 있다.